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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행 일 시 : 2009년 11월 29일
산 행 인 원 : 가자산산악회그리고 나
산 행 코 스 :
- 한티재 도착<09:29>
- 산행시작<09:34>
- 첫 헬기장(143)<10:00>
- 파계재도착<10:05>
- 파계봉도착(991.2m)<10:29>
- 두번째 헬기장<10:50>
- 마당재<10:52>
- 톱날능선통과시간<약 1시간 소요>
- 칼바위<11:52>
- 서봉<12:21>
- 점심식사<12:24 ~ 12:44>
- 팔공산정상(비로봉 1193.17m)<13:13>
- 약사여래입상<13:30>
- 동봉<13:36>
- 염불봉<13:47>
- 도마재(신령재)도착<14:42>
- 약수터(바른재)<15:04>
- 997봉<15:16>
- 느패재(능성재)<15:28>
- 은해사 - 갓바위갈림길<15:39>
- 노적봉< 16:13 >
- 관봉(갓바위)<16:33>
- 날머리<17:09>
산 행 시 간 : 약 7시간 32분(본인기준. 휴식,점심,사진촬영포함.)
날 씨 : 비와 눈,운무로 조망은 꽝, 기온은 시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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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八公山)은 대구광역시 동구와 경상북도 영천시, 군위군, 칠곡군, 경산시에 걸쳐 있는 높이 1,192m의 산이다. 삼국시대부터 공산(公山), 중악(中岳), 부악(父岳) 등으로 불려왔다. 1980년 5월 13일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대구 북동쪽을 감싸안고 있는 대구의 진산(鎭山)이다. 높이 1,192m(현장에는 1193.17m), 총면적 122.08㎢에 달하는 규모가 큰 산이다.[1]
워낙 팔공산이 유명하다보니 산에 대한 설명보다 산의 지명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는것 같다. 그래서
팔공산의 원지명들에대해 소개를 한다.
'장꼬방봉'이 '파계봉'으로, '노적봉'이 '인봉'이니 '노족봉'이니 하고 엉뚱하게 불리는 현장을 살핀 바 있지만, 잘못된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지역민들이 소홀히 하는 사이에 팔공산의 봉우리나 재 이름에 엉터리가 마구잡이 발생해 있었다. 가짜 이름들은 산기슭 사람들이 쓰던 전래의 진짜 이름을 밀어내고는 자신이 진짜인양 행세하고 있었다. 이름마저 엉터리가 되게 놔두는 판국에서 팔공산이 제대로 대접받게 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현장에서 보니, ’도마재’는 난데없이 '신녕재'로 둔갑돼 있었다. 옛날부터 이 재를 수시로 넘나들었다는 남북사면의 여러 어르신들에게 물었으나 누구 없이 "그건 도마재"라고 했다. 산성면 백학1리 노인들은 "신녕재라는 이름은 듣도보도 못했다"고 했다. 팔공산 주봉을 앞마당 같이 바라다보는 백학2동 어르신들 역시 "주능선에 신녕재라는 것은 없다"고 했다. 대구 공산쪽 어른들은 도마재라는 명칭에 이견 있음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래서이겠지만 국가 공식 지도도 도마재라 표기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도 등산 지도들은 신녕재라 적고 있었다. 대구-경북 공원관리사무소마저 현장 일대 여러 곳에 그렇게 안내해 놓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은 것일까?
느패재도 '능성재' '능선재'로 엉터리 표기되고 있었다. 대구-경북의 공원관리사무소가 곳곳에 안내판을 붙여 엉터리 이름을 널리 전파하는 선봉에 서 있었다. 더욱이 느패재는 위치 표시에서도 혼란에 빠져 있었다.
영천 신녕과 청통 노인들은 '느패'라는 것이 주능선 동사면의 은해사 골 제일 안쪽 운부골에 있는 땅 이름이라고 했다. 주능선 바로 밑에 있으면서 여러 산줄기들에 둘러 싸여 평평하고 널따란 분지를 형성하고 있는 곳. 얼마 전까지도 몇몇 농가가 그곳에 살면서 밭을 일궜다고 전했다. 그 위에 있는 재가 바로 느패재. 이 점은 그곳으로 나무하러 다닌 적 있다는 노인들에 의해 의심의 여지없이 인정되는 공통의 사실이었다.
대구 공산쪽 어르신들은 "이 재는 느패재로 불리거나 동국여지승람에서처럼 능패령(能覇嶺)이라 불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느패골이라는 골도 있다고 했다. 지금 골프장이 있는 골이 그것. 이 골은 본래 백안동의 동네 산이어서, 논에 거름으로 넣을 풀을 베거나 나무를 하는 등 동네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활동 터전이었다는 얘기가 들렸다. 이 마을 출신 송상무씨는 "봄철에 특정한 날을 잡아 동네에서 산신제를 올린 뒤 동시에 풀베기를 시작하곤 했었다"고 기억했다.
주민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린 것은 느패라는 말의 유래에 대한 해석뿐이었다. △넓은 곳이어서 느패로 불렸을 것이라는 추측과 △늪 같은 곳이어서 그런 이름이 생겼으리라는 추측 및 능패령에서 느패령으로 변화하면서 생겼으리라는 풀이가 제시됐다.
이 재는 주능선상의 운부봉과 은해봉이라는 두 봉우리 사이에 있다. 그 봉우리들에서 두 개의 산줄기가 출발해 그 중간을 은해사 계곡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느 산악회에서 세웠다는 현지의 돌 푯말은 재가 아닌 은해봉 봉우리를 재라 지목했고, 그것도 느패재가 아닌 '능성재'라 써 놓고 있었다.
주능선상의 지형들만 이름이 잘못돼 있는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골의 이름이 비틀려 버린 경우도 있었다. 골과 골을 넘어 다니던 재 이름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겨 있었다. 앞으로 각 골짜기를 자세히 살필 때 검토해 나갈 예정이다.
어쨌든 이번 취재를 통해 팔공산 주능선상의 중요 재와 골, 일부 봉우리들의 전래 명칭이 드러나 혼란이 정리될 기틀이 마련된 듯하다. 하지만 주능선을 거의 다 달려 종착점을 앞둔 지금까지도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가 적잖다. '팔공산하'가 임시 명칭을 부여해 호명하고 있는 봉우리들의 본래 이름을 찾아내는 것이 그것이다.
가산과 부계를 가르는 줄기가 출발하는 부계봉, 대왕재-도덕산으로 가는 줄기의 출발점인 870m대 봉우리군, 장꼬방봉, 신녕봉, 운부봉, 은해봉 등등이 제 이름을 찾고 확정해야 할 봉우리들이다. 정상부의 서봉-주봉(중봉)-동봉은 팔공산의 상징적 지형들이란 점에서 그 이름 찾기가 특히 급한 상황. 저절로 명확한 것이 없으면 합의해서라도 확정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은 지역민 모두가 애향심으로 동참하지 않고는 이뤄낼 수 없을 터. 에베레스트산 조차 그걸 측량했던 영국인의 이름을 버리고 주민들을 따라 초모렁마라 부르도록 만들고 있는 훌륭한 모범 사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매일신문 팔공산하 특집페이지에서 발췌) |

들머리 한티재에 도착하여 산대장님의 안전당부말씀을 듣고 힘차게 출발합니다.

나무계단을 올라와 바라본 한티재 휴게소

전형적인 육산의모습을 보여줍니다.

종주등로길에 멋있게 서서 반겨주는 아름다운 바위입니다.

첫 헬기장입니다.

첫 헬기장을 지나서 아름다운 안강형 소나무를 지나며 이미지흐림능력을 보여주시는 고지비총무님!

여기가 파계재입니다. (등로가 부더러워 여기까지 약 30분 소요됩니다.)

파계재를 지나니 등로길이 희미해 집니다.

종주 등로길 옆을 굳세게 지키고 서있는 바위 이정표격입니다.

가뿐숨을 몰아치며 약 54분을 달려오니 파계재에 도착합니다. 이후로는 시계가 정말불량해 집니다.

종주 이정표 128번앞에 있는 꼭 당간지주 밭침대 같이 서있는 바위

여기 마당재까지 등로가 아주 수월해 편히 진행합니다.

우리는 이바위를 올라서 진행을 합니다. <클릭!>

현위치 125번의 이정표역활을 톡톡히 해주는 바위 이정표 입니다.

서봉까지 소위 톱날능선이라는 구간을 통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위험한 구간은 아닌것 같습니다. 단지 아래위로 오르내리는 바위구간만 있다는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만큼 수월합니다.

소위 톱날 능선의 모습입니다. 우중과 운무의 조화속에 그 모습을 형량하기가 힘듭니다.

이 계단을 지나치면 그 옆에

이 같은 칼바위가 늠름하게 서있고,

위에 올라보면 그 모습은 더욱 뚜렷하게 보이고....,
나무 계단을 올라서 약간 진행을 하면 우리는 여기서 약간의 고민을 합니다. 좌측으로도 길이 나있고
우측으로도 길이 있습니다. 느낌상으로는 좌측이 맞는데(이 길은 산내면 오은사 방면), 실제로는
우측으로 진행을 해야 정등로로 갈 수가 있습니다. 운무와 겨울비때문에 많이 햇갈리기도 합니다.

종주 이정표 100이되는 이정표가되는 바위
이바위를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팔공산 서봉을 만납니다.(정상석 = 1,150m)

서봉의 또다른 이름 삼성봉
여기서 조금더 진행을 하면 헬기장이 나온다 우리는 거기서 점심을 해결 합니다.

말로는 43년만에 열린 팔공산 정상이라 하는데 다른 인터넷에서 보면 간간히 이 봉우리을 그 이전에도
밟은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여하튼 저는 처음 밟아본 팔공산종주길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비로봉을 안아 봅니다.
고도 때문인지 눈발이 재법날리고 있었는데 사진에는 나타나질 않는다.

비로봉을 되돌아 다시 나오면 계속해서 너덜같은 길을 걷는데,
마애여래좌상은 모른척 그냥 지나치고 약사여래입상의 그 장쾌한 아름다운 모습을 경험 합니다.

동봉(1,167m)입니다. 비가 많이 내려도 여전히 산님들로 붐빕니다.

비로봉이 열리기전 가장 높은 봉우리인 동봉에서 단체사진을 컷합니다.
한분도 빠짐 없이 웃음을 보여줍니다.

동봉을 뒤돌아 보면서 여기 동봉의 조망이 그렇게 화려하다는데 이날은 운무로 조망이 꽝이다.

염불봉같은데 확인이 안된다.

생각에 여기가 한티재에서 딱 10km되는 지점이다. 이후로 종주길은 아주 부더러워집니다.

여기가 도마재입니다.
좌측으로는 치산계곡-수도사-광산폭포쪽이고, 우로는 동화사가 3.8km이정표가 있다.

종주 등로길이 이러하게 유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산행의 속도가 빨라진다.

여기가 바른재입니다. 우측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 약수터가 있는데 갓바위지구 에서 올라오면
빈 물통를 들고 오다가 여기서 물을 보충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정표가 없다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길이다.

여기가 997봉이다. 어떤분들이 적어놓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삿갓봉)이라 적혀있다.
아쉬운것은 검증되지 않은 이름은 그냥 놔두는게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다. 괜히 자기가 볼때
어떤형상인것 같아서 적어 놓았는데 모르시는 산님들은 많이 햇갈려 하기도 하는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이 햇갈려 합니다. 그냥 놔두시길.....,

997봉에서 바라본 은해봉과 우측으로 가야할 능선의 모습 <클릭!>

930봉의 모습입니다.

비가 많이 내려서 느패재는 사진도 못찍고 지나쳐왔다. 그 곳에는 한무리의 산님들께셔 쉬고계셨는데, 이사진의 우측 내림계곡의 끝부분이 느패재이다. 느패재는 옛날에는 농사도 지었다하는데 실제로
보니깐 넓이가 아주 평평하고 넓은게 그말이 사실인것 같다.

여기가 은혜봉입니다. 느패재라고 잘못알고 있고 또,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좌측으로 은혜사, 우측으로는 갓바위 가는길이 있는 삼거리 봉우리능선입니다.

은해봉에서 독립군님!,홍초님부부님!,함지박! 이렇게 신나는 발등찍기를 합니다.
신발과 바지가 많이 젖었습니다.

관봉까지 가야할 능선의 모습입니다. <클릭!>

갑자기 열린 조망 때문에 지나온 능선을 황급히 파노라마로 잡아봅니다. <클릭!>
보일듯 말듯한 동봉과 비로봉의 모습이 신비하게 다가 옵니다.

이후 또다시 찐하게 다가오는 운무의 영향으로 무슨봉우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산님이 이름 붙혀놓은 도장 바위가 있는 봉우리

노적봉1

노적봉2(노적봉을 지나쳐서 바라보았습니다.)

16:33분 드뎌 관봉 갓바위에 도착 했습니다. 갓바위 부처님 형상을 보니
경주 석굴암 본존불과 관룡산 용선대의 부처님상이 갑자기 떠오르듭니다. 저는
이부처상의 아름다움에 그만 반해 버립니다. 그리고 조용히 합장하고
하산을 합니다.

정말 끝내주는 갓바위에서 보은사쪽 하산길의 계단 이날 가장 힘든 코스였습니다.

갓바위지구의 날머리입니다.(17:09)
혼자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종주하는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시간을 두고 종주를 해야하는 산악회의
종주산행길 처음 하는것이라 조금은 힘이 들었지만 겨울비를 촉촉히 맞으며 걸었던 대구 팔공산의 종주길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확실히 기억이 되도록 이산행기를 작성 하는 순간에도 새록새록 그 기억이 떠오릅니다. 즐거운만큼 아름답고, 힘든만큼 보람있는 산행이었습니다.
그럼 다음 산행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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